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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중도-진보 ‘피케티 독법’, 핵심 비켜났다
보수-중도-진보 ‘피케티 독법’, 핵심 비켜났다
  • 김동진 옥스퍼드대 박사과정
  • 승인 2014.12.30 11: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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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말하다_ 『피케티 패닉: 21세기 자본을 둘러싼 전세계 논쟁 지도』 김동진 지음|글항아리|256쪽|12,000원


올 한 해,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의 저서 『21세기 자본』이 던진 화두 ‘심화되는 불평등’은 전 세계를 거세게 휩쓸었다. 경제적 불평등을 화제의 중심에 세운 이 책의 매력은 경제사, 정치학, 사회학, 그리고 영문학 분야를 가로지르며 불평등에 대한 현대의 지식을 성공적으로 통합했다는 점이다. 사회과학과 인문학의 통섭으로 부를 만하다. 그렇다고 전문성이 떨어지지도 않는데, 글로 풀어쓴 저서의 행간에는 수학자로서 학문을 시작한 피케티가 지난 15년 간 주류 경제학계의 탑저널에 실었던 실증적 연구들이 묵직하게 자리하고 있다.

보수 진영은 래디컬한 저서의 주장에 경악했고,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Paul Krugman)은 이를 ‘피케티 패닉’이라 일컬었다. 크루그먼의 예측대로라면 『21세기 자본』은 향후 경제학계 그리고 사회과학계의 스테디셀러로 자리매김하면서 불평등과 자본 담론의 구심점 역할을 할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저서에 대한 논쟁이 격렬했던 만큼, 저서의 내용에 대해 제기된 다양한 비판과 이러한 비판에 대한 재반박을 함께 접할 때 비로소 저서의 깊이를 가늠할 수 있다.

『피케티 패닉』은 이 지점에서 유용성을 갖는다. 『21세기 자본』의 핵심 내용을 중심으로 읽기의 뼈대를 세우고, 피케티에 반박하는 이들이나 동의하는 이들이 어떠한 논리나 사실에 기반하고 있는지를 종합적으로 분석했다. 신문의 칼럼을 비롯한 대중적인 반응부터 학계의 전문적인 논의까지, 또한 이것들이 어떠한 자본 담론의 질서를 형성하는지 조망하고자 했다. 그러므로 이 책은 피케티 현상을 둘러싼 전 세계 논쟁지도라 할 만하다.

격렬하지만 왜곡된 논쟁점들

부의 불평등이 정치적인 사안인 만큼, 우리나라에서도 피케티 논쟁은 격렬한 양상을 띠면서 왜곡된 논쟁점들도 보였다. 이런 상황을 지켜보면서 여권과 야권에 다 투표를 해본 경험이 있는 필자는, 피케티의 책과 관련해 그동안 학계에서 일어난 일과 그가 일으킨 논쟁을 진영논리에서 벗어나 최대한 객관적인 시각에서 국내 독자에게 전달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피케티 패닉』은 『21세기 자본』이 촉발한 주요 논쟁을 제3자의 시각에서 관찰하듯 분석했다. 각 논쟁이 정밀하게 발전할 수 있도록 비평적인 분석을 하고자 했다. 정치적 성향을 떠나 애널리스트의 시각으로 논쟁이 되는 부분들을 좀 더 깊게 파고들고자하는 모든 사람, 입장은 다르더라도 지성인으로서 진솔하게 논쟁을 바라볼 수 있는 모든 이를 잠재적 독자로 여기고 집필했다. 무엇이 맞고 틀렸나를 주장하기보다는, 논쟁과 관련해 독자가 좀 더 다양한 분석을 참고할 수 있도록 해 생각을 확장시키고 자유로운 토론에 도움이 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이를 위해서, 『피케티 패닉』은 먼저 영미권 경제학자와 서구 언론을 중심으로 진행된 논쟁을 분석했다. 이에 더해서, 우리나라의 경제전문가들이 피케티의 저서를 그릇되게 해석하는 부분을 집중적으로 해부했다. 논쟁을 일으키기 위함이 아니라 논쟁을 정리해봄으로써, 자본 담론에 대한 우리의 집체적인 지식을 정리해보고자 했다. 보수 진영 뿐 아니라 진보 진영 및 주류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도 지나치기 어려운 문제점들이 눈에 띄었는데, 경제전문가들의 해석에서 보이는 오독 또는 오류는 세 가지 형태로 나타났다. 진보는 저서에서 시사하지 않은 점을 시사점으로 여겼고, 보수는 무관한 근거로 무리한 비판을 가했다. 중도가 내놓는 온화하지만 오독에 근거한 비평이 가장 우려스러웠다. 온화한 만큼 무비판적으로 수용되기 쉽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러한 점이 진영을 대표할 만한 논객의 주장에서 확연했다는 점이다.

『피케티 패닉』은 그러한 주장을 분석한 책인데, 예를 들어 진보는 우리나라의 피케티 비율(β)이 우려스럽게 높다고 밝히고는 따라서 ‘β를 낮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개인에게 β란, 그동안 물려받거나 저축한 재산을 올해 연봉으로 나눈 비율이다. 한 사회 단위에서 β가 높아지면, 부의 불평등이 부각된다. 부가 노동소득보다 더욱 편중돼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β를 낮춰야 한다’는 주장은 피케티의 해결책이 아니라는 점을 우리는 고찰할 수 있어야 한다. 대신, 피케티는 누진적인 상속세 및 자본세를 주장했다. 부를 소수에서 사회로 확산시키는 제도인데, 그렇다고 부가 사라지지 않는다. β 값이 떨어지지도 않거니와, 더 중요하게는 β 값을 낮추는 게 정책의 목표가 아니라는 점이다. 이러한 진보의 오해는 거기서 끝나지 않고, 보수로 하여금 ‘피케티는 부를 미워하는가’라는 의문을 갖게 할 수 있다. 따라서 시정할 필요가 있다.

보수는 무관한 근거로 ‘따라서 피케티는 틀렸다!’를 외쳤다. ‘『21세기 자본』 vs. 『위대한 탈출』 누가 맞을까’가 전형적인데, 하나만 맞다는 인식을 조장했다. 하지만 두 저서를 조금만 읽어보면 두 저서가 상호보완적임을 알 수 있다. 오히려, 『위대한 탈출』은 피케티의 노동시장 분석과 초부유층 연구의 중요성을 직접 강조했다. 이념과 상업성이 결부된 무의미한 구도였던 것이다. 물론, 『위대한 탈출』은 불평등의 순기능을 부각한다. 그렇다고 현재의 극심한 불평등이 성장을 촉발시킨다고 주장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위대한 탈출』의 저자는 부의 엄청난 집중 현상이 성장을 가능하게 하는 창조적 파괴의 숨통까지 막아 성장의 기반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일갈했다. 스스로 선정한 책에서도 나타나는 이러한 우려를, 보수는 직시할 필요가 있다. 또한 경제사적 관점에서도 누진세에 대한 피케티의 주장을 소위 ‘좌파 빨갱이’의 것이라 틀짓기 어려운 사실이 있다. 피케티가 자주 인용하는 20세기 중반의 미국은 강한 누진세율과 경제성장을 동시에 구가했는데, 당시 미국에서는 매카시즘 광풍이 한창이었고 공산주의자 척결에 혈안이 돼 좌파와 대립각을 세웠지만 당시 최상위 부유층에 대한 누진소득세율은 80퍼센트 이상으로 유지됐다.

중도는 ‘허수아비 논증의 오류’를 보였다. 피케티의 주장을 부익부로 치부하고는 적용이 어렵다며 온화하게 비평했다. 피케티는 다양한 분석을 한다. 지난 세대의 불평등에 대해서는 노동시장의 세율 변화와 매니저들의 협상력 증가로 설명했다. 현재의 불평등이 부익부로 이어질 개연성이 보이며, 21세기 중반에는 19세기식 세습자본주의가 도래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물론 미래에 대한 그의 이론은 틀린 예측으로 판명될 수 있다. 하지만 중도는 외환위기 이후 한국의 불평등을 논하면서, 피케티의 미래 예측인 부익부 이론을 잘못 적용하고는 이내 적합하지 않다고 비평했다. 책을 읽었다면 피케티의 노동시장 분석틀이 한국의 소득 불평등을 이해하는데 적합한지를 따졌어야 했다. 이렇듯 『피케티 패닉』은 피케티의 저서와 학계와 언론의 반응을 종합적으로 살펴보고 중립적 시각으로 분석하는데 역점을 뒀다.

부와 소득 편중이 가져올 부작용

2014년이 끝나는 이 시점에서 우리는 굳이 피케티의 담론을 깊게 들여다 볼 필요가 있을까. 필자는 2014년이 불평등과 자본 담론의 정점이 아니라 시작점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경제적 불평등은 시장원칙, 조세체제, 정치제도, 입법과정, 복지정책, 세계화, 기술의 변화, 기업지배구조, 그리고 대중문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슈와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불평등이 심화될수록 무상복지에 대한 정치적 요구는 거세질 것이다. 이러한 요구는 정부에 대한 국민의 압박으로 작용할 수 있고, 다음 선거에서 또 다시 부각될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원서로 900페이지에 이르는 『21세기 자본』은 방대한 만큼이나 다양한 이슈를 다루는데 시사점을 찾는 이에게는 유용한 면이 많다. 저서는 우리나라와 같은 중진국이 왜 복지국가로 변모하기 현실적으로 어려운지를 피케티의 관점에서 경제사적으로 설명하는데, 『피케티 패닉』은 한국의 상황에 적용가능한 저서의 포인트를 짚고 중산층을 유지할 수 있는 그의 대안을 해석한다. 투자은행 모건스탠리(Morgan Stanley)가 우리나라를 상속/세습/승계형 경제로 분류한 점을 저서는 소개하고, 갈수록 재벌가 자녀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드라마가 흔해지고 그들의 편법적 증여가 목도되는 현실에서 초부유층의 사회포획현상을 피케티의 핵심 메시지로 제시한다. 피상적으로는 다르게 표출되는 사회 문제라도 그 이면에는 심화되는 불평등과 맞닿은 이슈들이 많다. 따라서 불평등에 대한 논쟁을 따라가다 보면, 사회 문제에 대한 통섭과 사색이 가능해진다. 불평등과 자본에 대한 담론은 단지 지나가는 소나기가 아니라, 불평등이 심화될수록 강력하게 그리고 주기적으로 표출될 것으로 생각된다.

『21세기 자본』은 불평등이 늘 같았기 때문에 그냥 놔둘 문제가 아니라, 실은 거대한 굴곡을 보여 왔으며, 세율 정책에 따라서도 그 정도가 대단히 바뀌어 왔음을 실증했다. 저서의 핵심은 단순히 ‘불평등을 없애고 착하게 살자’는 무의미한 구호(glittering generality)가 아니라, 부와 소득이 지나치게 편중될 때 발현할 수 있는 부작용임을 우리는 행간에서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방대한 『21세기 자본』을 읽고, 이에 대한 비판까지 스스로 생각하기란 누구에게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는 작업이다. 필자는 『피케티 패닉』을 집필하면서, 피케티, <이코노미스트>의 에번트, 드롱, 리드, 앳킨슨, 스타인바움, 촘스키, <가디언>, 디턴, <파이낸셜타임스>, 맨큐, 로그리니 등 전 세계의 다양한 지식인과 언론과 직접 만나거나 서신을 교환하면서 생각의 틀을 잡고 확인하는 과정을 거쳤다. 그들은 진영논리를 떠나 유용한 조언을 해줬고, 필자의 필요에 따라 서면 인터뷰 또는 분석을 전문 사용할 수 있도록 배려해줬다. 『피케티 패닉』이 불평등과 자본에 대한 거대담론을 바르게 이해하는데 유용할 시사점을 제공하기를 바란다.

 

김동진 옥스퍼드대 박사과정
골드만삭스에서 애널리스트로 활동하다 옥스퍼드대에서 경제사를 공부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피케티 패닉』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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