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근 충북대 심리학과 교수
요즘 들어 주위에서 미신이나 근거 없는 ‘예언’ 같은
이야기가 부쩍 많아졌다고 느껴진다면,
아마도 우리가 그동안 스트레스와 불확실성 속에서
지내왔다는 방증일 수도 있다.
'내 삶의 심리학 마인드’와 <교수신문>이 함께 ‘세상의 중심에서 심리학을 외치다’ 공동 기획을 마련했다. 최근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주제를 다양한 관점으로 들여다보는 주제탐구 방식의 새로운 기획이다. 한 주제를 놓고, 심리학 전공 분야의 마음 전문가들이 다양한 시각과 분석을 통해 독자의 깊이 있고 입체적인 이해를 돕는다. 마음 전문가의 눈에 비친 세상의 모습은 길을 잃은 현대인에게 길잡이가 될 것이다. 몸과 MBTI, 학교 정글, 중독에 빠진 대한민국, AI시대의 심리학, 웰에이징 시대, 법에도 마음이 있다, 광고 심리학을 입다, 가족이 제일 어려워, ‘예술, 심리학을 만나다’, ‘심리학, 마음을 재다’, ‘잠을 잊은 그대에게’, ‘상담의 기술’, ‘심리학, 감정을 파헤치다’, ‘한국 청년들의 무기력’에 이어 열여섯 번째 주제로 ‘미신 한국’을 다룬다. 정수근 충북대 심리학과 교수의 두 번째 글이다.
근거는 없지만, 영향력은 막강하다
얼마 전, 7월 초에 일본에서 대지진이 일어날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일본은 실제로 지진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지역이지만, 7월 초라는 구체적인 시점의 출처는 연구 논문이나 정부의 공식 발표가 아닌 일본의 한 만화책이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이 이전에 출간된 만화에 2011년의 재난을 암시하는 장면이 있었고, 그 만화에 2025년 7월의 대재난도 언급되었다는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7월 초 대지진 ‘예언’도 현실이 될 수 있다고 믿기 시작한 것이다.
과학자들은 지진이 언제 어디서 발생할지 정확하게 예측하기는 어렵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만화 속 ‘예언’의 영향 때문인지 일본 여행 예약이 예년에 비해 급감했다는 뉴스가 보도되기도 했다. 결국 7월 초에 일본에서 대지진이 발생하진 않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지진 발생 예언을 어느 정도 진지하게 받아들였던 것 같다.
이처럼 우리의 일상에서 과학적인 근거가 없는 미신들이 생각보다 많이 퍼져 있다. “내가 축구 경기를 보면 우리나라가 꼭 진다”며 월드컵 우승을 위해 일부러 경기를 보지 않아야겠다는 농담도 간혹 들을 수 있다. 대한민국 대표팀이 역대 월드컵 경기에서 이긴 경기보다 진 경기 수가 더 많았다. 따라서 경기를 본 날 우리 팀의 패배를 경험하는 것은 아무런 인과관계가 없이도 충분히 반복될 수 있다. 그러나 뇌는 실제로 아무런 관계가 없는 우연한 사건들 사이에서 규칙을 찾고 의미를 부여하려는 경향이 있다. 뇌가 패턴을 인식하는데 매우 능하기 때문이다.

없던 패턴도 만들어 인식하는 뇌
미국 듀크대 연구진은 뇌의 패턴 인식 능력을 보여 주는 흥미로운 실험을 진행했다. 실험 참가자들은 뇌의 반응을 측정할 수 있는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 장비 안에서 원과 사각형 자극이 무작위로 제시되는 화면을 보며 도형의 모양에 따라 버튼을 누르는 간단한 과제를 수행했다. 자극이 제시되는 순서는 완전히 무작위였지만, 우연히 원이나 사각형 중 하나의 자극만 연속으로 제시되기도 했고 때로는 원과 사각형이 반복되는 패턴처럼 반복해서 번갈아 나오기도 했다.
이러한 우연히 발생한 반복되는 패턴이 끝날 때마다 머리 앞쪽에 있는 전전두피질(prefrontal cortex) 영역이 강하게 반응했다. 참가자들은 자극 제시 순서가 무작위로 결정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자극 제시 규칙을 의식적으로 찾으려 하지도 않았지만 뇌는 자동으로 패턴을 감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패턴 감지 능력은 아주 어린 시기부터 나타난다. 생후 2개월 된 아기에게 왼쪽과 오른쪽에서 번갈아 반짝이는 불빛을 반복해서 보여 주면, 아기는 다음 불빛이 나올 방향으로 미리 시선을 옮긴다. 이처럼 반복되는 자극을 통해 패턴을 발견하고 미래를 예측하려는 시스템이 이미 아기의 뇌에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과도한 패턴 인식의 명암
불확실한 환경에서 반복되는 패턴을 빠르게 학습하고 적절히 반응하는 능력은 생존에도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비가 많이 오면 계곡물이 급격히 불어난다는 경험을 통해 다음에 비가 올 때 계곡을 피하는 행동은 생존 확률을 높이는 전략이다. 덤불이 흔들린 직후 맹수가 나타났던 경험을 했다면 다음에도 비슷한 상황에서 위험을 예상하고 대비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이런 패턴 인식은 위험을 회피하고 생존 확률을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다양한 인지 기능의 기반이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문법은 언어에서 반복되는 패턴의 모음이고, 우리는 이러한 패턴을 학습할 수 있기 때문에 한국어의 문법을 정확히 설명하지는 못하더라도 자연스럽게 구사할 수 있다.
뇌의 패턴 인식 기능은 매우 유용하지만, 때로는 아무 관련이 없는 사건들 사이에 의미를 부여하고, 존재하지 않는 인과관계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이런 뇌의 과잉 해석은 비과학적인 미신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렇다면 미신을 잘 믿는 사람은 뇌가 비정상적으로 작동하거나 인지 기능이 떨어지는 것일까?
꼭 그렇지는 않다. 실제로 한 연구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특정 믿음이 비과학적이고 논리적 근거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실제로는 그 믿음의 영향을 받아 행동한다고 응답했다. 일상 속 사소한 미신은 대체로 큰 해를 끼치지 않으며, 오히려 불확실한 세상 속에서 나름의 안정감을 주기 때문이다.
현실의 답은 미신에 있지 않다
그러나 과학적 근거가 없는 미신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것은 위험하다. 미신에 따라 의학적 치료를 거부한다거나 미신에 의존해 중요한 투자를 결정한다면 실제로 큰 손해를 볼 수도 있다. 미신적인 사고가 강화되는 데는 여러 요인이 작용한다. 그중에서도 중요한 요인 중 하나는 개인이 느끼는 통제감의 상실이다. 실제로 전쟁이나 경제 불황, 자연재해처럼 예측이 어렵고 통제하기 힘든 상황에서는 사람들의 미신적 믿음이 증가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통제력을 잃었다고 느낄 때, 심한 스트레스를 받을 때 뇌는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서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패턴을 인식하고 나름의 질서를 부여함으로써 통제감을 회복하려는 전략을 취하는 셈이다.
돌이켜보면 지난 몇 년 동안 우리는 코로나19 팬데믹, 사회적 갈등, 정치적 불안정 등 크고 작은 위기를 반복해서 겪어 왔다. 만약 요즘 들어 주위에서 미신이나 근거 없는 ‘예언’ 같은 이야기가 부쩍 많아졌다고 느껴진다면, 아마도 우리가 그동안 스트레스와 불확실성 속에서 지내왔다는 방증일 수도 있다. 미신적 믿음에 기대는 것은 불확실한 현실에서 때때로 마음을 달래줄 수 있지만, 현실의 문제 해결에는 미신보다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사고가 더 도움이 될 것이다.
정수근 충북대 심리학과 교수
연세대에서 심리학을 전공하고 하버드대에서 인지심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프린스턴대 신경과학연구소 박사후연구원, 한국뇌연구원 인지과학 연구그룹 그룹장을 거쳐, 현재는 충북대 심리학과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인간이 세상을 지각하고 기억하는 인지 과정을 연구하고 있으며, 인지심리학 연구의 현실 세계 적용에도 관심이 있다. 저서로는 『팬데믹 브레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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