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에서 원숭이 잡는 법’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목이 가는 둥근 유리병에 땅콩을 넣어 원숭이들이 노는 숲속에 설치해 둔다. 그러면 원숭이들이 와서 병에 손을 넣어 그 속에 있는 땅콩을 움켜잡고는 손을 빼지 못한다. 나중에 사냥꾼들이 잡으러 다가올 때도 손을 펴서 도망치면 될 텐데, 끝내 땅콩을 움켜잡은 손을 펴지 않다가 결국 잡히고 만다.
손에 쥔 것을 놓지 못해 잡히고야 마는 이야기 속 원숭이는 흡사 우리 자신을 닮았다. 잘못된 결과가 나올 줄 알면서도 집착을 버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노자는 『도덕경』 제33장에서 “남을 아는 자는 지혜롭고, 자신을 아는 자는 밝다. 남을 이기는 자는 힘이 있고, 자신을 이기는 자는 강하다(知人者智, 自知者明, 勝人者有力, 自勝者强)”라고 했다.
여기서 ‘자신을 이기는 자(自勝者)’란 내면의 분열과 혼란을 통합하여 흔들리지 않는 내적 일관성을 지닌 사람을 뜻한다. 바꾸어 말하면 ‘손에 쥔 땅콩을 놓을 수 있는 판단력과 용기를 가진 자’를 의미한다. 흥미롭게도 조선시대 회화 가운데 이러한 교훈을 시사하는 작품들이 있다. 옛 그림을 통해 노자가 말한 ‘자승자강(自勝者强)’의 가르침을 살펴보기로 하자.

윤두서, 「자화상」, 종이에 연한 색, 38.5x20.5cm, 국보 제240호, 해남 녹우당
‘나는 누구인가’를 묻는 그림, 윤두서의 「자화상」
먼저 공재(恭齋) 윤두서(尹斗緖, 1668~1715)의 「자화상(自畵像)」을 보자. 풍만한 얼굴에 반듯한 눈썹, 정면을 응시하는 눈, 그리고 화면의 절반을 차지하는 긴 수염은 마치 살아있는 사람을 보는 것 같다. 원래는 어깨선과 옷 주름 선이 연하게 있었는데 보수하는 과정에서 지워져, 마치 얼굴만 허공에 떠 있는 것처럼 기묘하게 변했다.
무엇보다 주목할 것은 이 「자화상」이 단순한 초상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말 그대로 존재에 대한 질문, 즉 “나는 누구인가”라는 철학적 물음에서 출발한 그림이기 때문이다. 화려한 배경이나 상징을 모두 제거한 채, 오직 ‘윤두서라는 인간’만 남겨 두었다. 이는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직면하려는 태도, 그러니까 “자기를 아는 자는 밝다(自知者明)”는 노자의 말과 정확히 겹친다.
윤두서는 고산 윤선도의 증손자로 남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서인 정권 아래에서 계속되는 화를 당하자, 벼슬길을 포기하고 고향인 해남으로 내려가 학문과 예술에 전념했다. 그의 「자화상」은 해남으로 내려간 바로 그해인 45세 때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세속적 기준으로 보면, 윤두서는 ‘성공한 인물’이 아니다. 당쟁의 희생자로 중앙 정치 무대에서 스스로 퇴장했다. 그는 세상과의 싸움에서는 물러났지만,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는 물러서지 않았다. 분노를 발산하지 않고 학문과 예술로 승화시켰기에 노자가 말한 ‘자신을 이기는 자가 강하다(自勝者强)’는 교훈을 철저히 실천했다고 볼 수 있다.
오랜 세월이 지났으나 윤두서의 「자화상」은 볼 때마다 큰 감동을 준다. 또한 이 그림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는 듯하다. ‘나는 나 자신을 알고 있는가’, ‘나는 내 손에 있는 땅콩을 놓을 수 있는가‘. 이 질문들은 윤두서의 「자화상」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크고, 날카로운 교훈이리라.

정약용, 「매조도」, 1813년, 비단에 연한 색, 44.9x18.5cm, 고려대학교 박물관
빛바랜 치마에 그린 정약용의 「매조도」
윤두서의 외증손인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이 그린 「매조도(梅鳥圖)」 또한 노자의 ‘자승자강’과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정약용은 천주교인이라는 이유로 1801년 신유사옥 때 체포되어 강진으로 유배되었다.
강진에서 보낸 귀양살이 18년 동안 『목민심서』와 『여유당전서』를 비롯해 무려 500여 권에 달하는 책을 쓰며 자신의 학문과 사상체계를 완성했다. 유배라는 극단적인 시공간에서 정신적 안정을 회복하고 자기완성을 이루어낸 정약용은 노자가 말한 ‘강한 자’의 전형이다.
시서화일치의 경지가 돋보이는 「매조도」는 정약용이 유배지에서 그린 작품이다. 매화 가지에 앉은 새의 표현은 물론, 아름다운 서체로 쓴 시와 발문에는 가족에 대한 애정이 절절하게 표현되어 있다.
파르르 나는 저 새가 우리 집 매화 가지에서 쉬는구나.
꽃다운 그 향기 짙기도 하여 즐거이 놀려고 찾아왔네.
여기에 깃들어 지내며 네 집안을 즐겁게 해주어라.
꽃이 이제 다 피었으니 그 열매도 가득 맺히리라.
내가 강진에서 귀양살이한 지 수 년 만에 부인 홍 씨가 낡은 치마 6폭을 보내왔는데, 해가 묵어 붉은 빛이 다 바랬기로 잘라서 서첩 4권을 만들어 두 아들에게 주고, 그 나머지로 작은 그림을 그려 딸아이에게 준다. 가경 18년(1813) 계유 7월 14일에 다산동암(茶山東庵)에서 쓰다.
유배 온 지 13년째 되는 해에 아내 홍 씨가 낡은 치마를 보내왔다. 정약용은 이 치마를 잘라 아들들에게는 훈계하는 글을 써서 『하피첩(霞帔帖, 노을처럼 빛바랜 치마로 만든 서첩)』을 만들어 보냈다. 한 해 전에 시집간 외동딸에게는 아름다운 「매조도」를 그려 주었다.
매화는 혹독한 추위를 이겨내고 가장 먼저 꽃을 피우는 식물로, 전통 회화에서 군자의 절개와 인내, 고결함을 상징한다. 하지만 정약용의 매화는 기존의 상징을 넘어선다. 「매조도」는 세상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모습이 아니라, 좌절과 고뇌를 가족의 사랑 안에서 다스린 결과이기 때문이다. 「매조도」는 그런 내적 투쟁의 결실이며, ‘자기를 이기는 자가 강하다’는 명제를 단단하게 증명한다.
『도덕경』 47장에는 이런 말이 있다. “문을 나서지 않고도 천하를 안다(不出戶, 知天下).” 정약용은 강진이라는 제한된 공간에 있었지만, 사유는 자유로웠고 정신은 넓어졌다. 외적 자유가 아니라, 내적 자유를 얻은 것이다. 결국 정약용에게 ‘자승(自勝)’이란 고통을 사유로 전환해 학문으로 승화시킨 노력의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이정, 「풍죽도」, 비단에 먹, 127.5x71.5cm, 간송미술관
비움과 회복탄력성의 미학, 이정의 「풍죽도」
여기에 탄은(灘隱) 이정(李霆, 1554~1626)의 「풍죽도(風竹圖)」를 함께 놓아보면 ‘자승자강’의 의미는 더욱 확장된다. 조선 중기의 문인화가 이정은 바람에 맞선 대나무를 화폭에 담음으로써 바람의 존재를 실감 나게 표현했다. 대나무는 속이 비어 있으면서도 곧게 자라며, 바람에 휘어질지언정 부러지지 않는다. 「풍죽도」 속 대나무는 거센 바람을 맞으면서도 자신만의 리듬을 유지한다. 이는 외부 환경에 맞서 힘으로 저항하기보다 비움과 유연함을 통해 스스로를 지키는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이 그림을 그린 이정은 세종대왕의 고손자로, 왕실의 후손이라는 탄탄한 배경 덕에 부러울 것 없는 삶을 살았다. 하지만 마흔 살 무렵 발발한 임진왜란 중에 큰 화를 입게 된다. 이정의 절친한 친구 최립은 이정의 화첩인 『삼청첩』 서문에서 ‘난이 일어나자 (이정이) 왜적의 칼에 맞아 오른팔이 거의 끊어질 뻔하다 이어졌다. (…) 난이 평정된 후에 그린 그림을 보니, 그림의 품격이 더욱 높아졌다’고 적었다.
그의 「풍죽도」를 보면, 바람은 수평으로 몰아치고 대나무는 수직으로 서 있다. 이 구조는 피할 수 없는 시련을 상징한다. 노자가 말했듯, 도(道)는 피함이 아니라 받아들임과 순응 속에서 작동한다. 그림 속 대나무는 바람을 거부하지 않고 몸을 내어준 결과 생을 지속할 수 있었다. 이는 외적 상황과 내적 중심을 구분하는 노자의 지혜와 맞닿아 있다. 바람은 외부의 사건이며, 곧음은 대나무의 본성이다. 임진왜란이라는 거대한 역사적 광풍 속에서, 이정 개인과 조선 사회는 심각한 상처를 입었다. 그러나 최립의 기록처럼, 난 이후 오히려 그림의 품격이 더 높아졌다는 점은 시련이 내면의 깊이를 키웠음을 말해준다.
『도덕경』 제40장에서 노자는 이렇게 말한다. “되돌아감이 도(道)의 움직임이다(反者道之動).” 바람이 지나간 뒤 대나무가 다시 곧게 서는 장면은, 단순한 자연의 묘사가 아니라 도의 운동을 상징한다. 휘어졌던 것은 패배가 아니라, 되돌아오기 위한 과정인 셈이다.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회복탄력성(resilience)은 이미 노자의 사유 속에 깊이 담겨 있다. 억지로 버티는 것이 아니라, 흔들릴 수 있음을 허락하고도 본래 자리로 돌아오는 힘. 「풍죽도」의 대나무는 바로 그 모습을 보여준다.
노자가 말한 ‘자승자강’은 결코 추상적 교훈이 아니다. 윤두서는 자신을 직시했고, 정약용은 고통을 승화시켰으며, 이정의 대나무는 바람을 맞으면서도 다시 일어서는 의지를 보여준다. 결국 진정한 강함이란 자신을 속이지 않는 용기와 회한과 두려움을 조율하는 능력과 흔들리면서도 중심을 잃지 않는 태도에서 나온다고 할 수 있다. 우리에게 남은 질문은 이것이다. “나는 지금 무엇을 움켜쥐고 있기에 자유롭지 못한가?”
김정숙 박사
서울대 회화과를 졸업하고,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묵란화 연구」로 미술사학 박사 학위를 받 았다. 한국외대·고려대·한국문학번역원 등에서 강의했다. 고려대 에서 최우수 강의상인 ‘석탑강의상’을 수상했다. 주요 저서로 『옛 그림 속 여백을 걷다』, 『그 마음을 그대는 가졌는가』, 『그림으로 읽는 논어』 등이 있다. 현재 한국저작권보호원 심의위원회 심의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옛 그림의 의미와 감동을 대중에게 전 하고자 글쓰기와 강의를 병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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